2018년 12월 1일 토요일

청소부

은수가 테니스를 배우는 어느 오후.. 오후라고는 하지만 네시면 깜깜해지는 이곳에서 저녁과 다름이 없는 그 시간을 테니스장 옆 나무아래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옆 초등학교 건물 한쪽에 불 켜진 교실을 청소하고 있는 분이 보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땋은 뒷모습 정도가 보였다.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이곳도 학교 청소는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 청소 담당자들이 하시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방과후 학교나 학원에 가거나, 아니면 집에 가 있는 동안, 아이들이 아닌 누군가가 청소를 한다. 물론 선생님들도 아니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면, 한국에서 학교다닐 때 학교 곳곳 -교실, 복도, 화장실, 교무실, 특활실까지 모두를 청소하던 게 생각난다. 빗자루로 쓸고 기름걸레로 마루에 윤기를 내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했던 매일의 일과. 청소는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건 그 때의 언어로 설명하면 ‘힘드니까’ ‘빨리 놀고 싶으니까’ 였을 테고, 또 한편으론 청소가 그저 ‘선생님이 하라고 하면 하는 거다’ 라는 학교 전체를 지배하던 만트라를 체화하는 방식이었을 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도 청소의 의미를 이야기하지 않았고, 시키니까 했을 뿐이다.

예컨대 ‘내가 있던 곳은 내가 치운다’는 상식이 공유되고 또 생활에 자리잡도록 하는 과정으로서의 가르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두가 각자 있던 자리를 치우는 것이 청소였다면 - 그랬다면, 청소는 내 책상 주변 치우기 정도 규모의 일로서 여전히 좀 귀찮기는 해도 비교적 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생님들도 함께 청소를 했을 것이다 - 권력관계에서 '아랫사람'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공간을 함께 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로서의 청소. 그랬다면 학생들이 교무실 청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학생들도 더이상 청소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청소부들이 오신다. 그리고 청소부들은 월급도 적고 고용이 불안정한, 자본사회에서 '아랫사람'에 위치한다.

왜 선생님들도 청소를 함께 하는 것 대신, 아이들도 청소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뀐 걸까? 아이들은 ‘청소할 시간에’ 공부를 더 하고 (그 시간에 더 쉬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대학을 더 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아진 것은 무엇일까, 대학을 가면 어떻게 되길래?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자아실현을 하기 때문에, 세상에 ‘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때문에? 그런 아이들은 청소부가 되기 보단, 다른 무언가가 되어갈 것이다. '내가 있던 곳은 내가 치운다'는 상식은 내버려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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