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6일 화요일

믿건대 먼저 밟으시는 언니들이여! 푹푹 디디어서 뚜렷이 발자취를 내어 주시오. 어지간하여도 또 눈이 오더라도 그 발자국의 윤곽이나 남아 있도록. 깔려 있는 백설 위로도 만곡요철이 보이건마는 그 속에 묻혀 있는 탄탄대로는 보이지 않는구려.
  다행히 누가 먼저 밟아 놓은 발자국을 따라 길을 찾게 되었소마는 그 사람도 몇 군데 헛디딘 자국이 있는 것을 보니 이 두터운 눈을 한 번 밟기도 발이 시리거든. 그 사람은 길을 찾노라고 방황하기에 얼음도 밟게 되고 구덩이에도 빠지게 되었으니 아마도 그 사람의 발은 꽁꽁 얼었을 것 같소. 동동 구르며 울지나 아니 하였는지 몹시 동정이 납니다.
   그러나 그 발자국 따라 반쯤 올라가니 그 사람의 간 길과 나 가고 싶은 길이 다르오그려. 나도 그 사람과 같이 두텁게 깔린 눈을 푹푹 디디어야만 하게 되었소. 차디찬 눈이 종아리에 가 닿을 때에는 선득선득하고 몸에 소름이 쭉쭉 끼칩디다. (중략) 아무려나 미끄러져서 머지가 터질 각오로 밟아나 볼 욕심이오.

나혜석, <학지광> 1917년 3월호

내가 나혜석에게서 캥기는 부분은 두 가지다. 자식들이 고통스러워했을 부분, 그리고 식민지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기회가 되면 더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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