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6일 토요일
일주일에 걸쳤던 논문자격시험의 마지막 날 아침은 눈으로 시작했다. 나랑 함께 시험을 치르는 메간은 밤을 새고 새벽 여섯시 무렵에 눈-번개가 치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더니 메간은 연신욕을 하며 답을 써내려갔다. 제대로 답 못할것이 당연하니 어디 할수있는만큼 해보라, 는 메시지는 시험지를 내려다보는 내 위로 차가운 구두굽처럼 내리 눌렀다. 형식적인 시험이지만, 시험출제자의 구미에 맞는 답을 해야 하므로 마음이 편한 시험은 아니었을 뿐더러, 어떻게 공부를 해도 피상적인 수준에서밖에 답할수없는문제들이어서 답을 써내려가는 것이 무언가를 쌓아가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덩이를 파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시험날이라고, 시험을 마치고 4층 실험실에 내려와보니 제임스는 벌써 위스키를 따른 잔들을 준비 중이고 사람들이 모여 축하 한다는 인사를 전하는데, 이미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는 나는 그곳이 없는 것과 다름 없었다. 정신없는 사이 건물옆 레스토랑으로 이동해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주로 자기 확신에 찬 말들 -남을 욕하거나 자기를 방어/치사하거나- 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말은 한다는 것은 이미 어느정도의 자기 확신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줄곧 할말이 없었다. 시험 치는 동안 흩날리던 눈은 거짓말처럼 모두 녹고 늦은 오후의 긴 햇살이 이제는 누그러지라고 말했다. 오늘만큼은 은수를 일찍 데리고 오고 싶었기에, 한시간 정도 말없이 앉아 있다 자리를 떴다. 타임스퀘어 역에서 내렸을때 오늘은 어느 흑인 청년이 플라스틱 양동이들을 뒤집어 놓고서 막대기로 두드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뉴욕 지하철 예술가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악. 아마도 최초의 음악이었겠지 ㅡ 오늘 온종일 나를 쫓은 형태학조차도, 인류 최초의 음악이 무엇이었을지는 끝내 모르겠지. 학부 4학년 무렵이었나, <무문자 사회의 역사> 라는 책에서 어느 아프리카 부족이 북을 두드리며 부족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승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물질로 남지 않는 시간. 그러고 보면 그 책은 제대로 읽은 게 아니었고, 오히려 그 무문자 역사의 전승에 사로잡혀 항상 멍하니 책만 만지작거렸던것 같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끝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들에, 둥둥거리며 북소리가 스치며 지나가는 것은, 그들처럼 나도 북소리로 오늘을 기억하기 위함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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