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의 역설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즉, 도움이 있을때, 혹은 도움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했을때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경험들 말이다. 예컨대 은수랑 단 둘이 몇일을 보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주말에 남편이 늦잠을 자는 와중에 내가 은수와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상황이면 버거움이 찾아든다. 친정 엄마가 도움을 주러 와 있으면 나는 일순간 누군가의 아이가 되어버린다. 기댈 곳이 있으면 우리는 기대는 자세를 취한다.
홀로 서는 곧은 자세. 그 오롯함의 순간은 드물게 찾아오지만, 대부분은 은수와 둘이서만 있을 때다. 둘이서 조용히 집에서 꼬물거릴 때, 둘이서 지하철을 타고 외출할 때, 둘이서 씻고 밥 먹을 때. 우선 내 마음이 '지금 도움을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앎으로, 보다 큰 호흡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 역시 긴밀한 협조 체제에 가담한다, 아빠나 외할머니가 있을 때는 자기가 떼 쓰면 누가 더 잘 들어줄지 상황을 살피느라 바쁜 반면. 아이와 둘이 가는 길은 언제나 공고하다는 느낌을 준다. 불안하기보다는 든든하다.
런던올림픽 역도 경기를 은수와 수없이 리플레이하여 보며 울음이 솟구친 것은, 자기 앞의 들 것을 오직 자기 몸으로 들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칼같이 명료하였기 때문이다. 내 삶이 내 어깨에 온전히 얹혀졌다는 그 느낌, 그 무게감으로 비로소 일어선다는 것. 그 무게를 견디는 나의 얼굴에 치기, 오만, 분노가 서리지 않기를 바란다. 바벨을 들어올린 뒤 그 핏줄 선 환희의 얼굴이 내게 어른거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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