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가는 길 막바지에 이르면 허드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건물벽에 부딪히면서 강풍 지대를 만든다. 건물 앞을 지나가는 동안에는역방향으로 불어대고, 이내 건물 옆을 돌아 어린이집 현관을 향하는 동안에는 정방향으로 바뀌어 우리 등을 떠밀다시피 한다. 저항하는 듯 하다 부추기는 것으로 변하는 바람의 움직임. 어린이집에 은수를 두고 혼자 나와서 걷기 시작하면, 같은 바람이 반대로 작용한다: 즉 어린이집 방향으로 불던 '부추기는' 바람은 이제 어린이집을 나서는 내 몸에 '저항한다.' 어린이집을 떠나지 못하는 내 마음이기도 한 그 바람 때문에 문워킹이 따로 없는 몸짓을 해대며 몇초간의 초월감을 만끽한다. 그러고 나면, 일전에 은수와 나를 가로막았던 바람이 나의 등을 강하게 떠미는 바람이 되어, 나는 어느새 바람에 밀려 뛰다시피 하며 집으로 향한다. 바람의 통로는 어린이집을 오고 가는 의례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강하게 빨려들어가다가 움직일 수 없을만큼 저항감을 느끼는 매일의 반복. 지난 주말에는 1974년 World Trade
Center 지붕 사이를 케이블선으로 연결하여 그 위를 걸었던, 필립 쁘띳에 관한 다큐를 틀었다. 예술과 스포츠/레저는 안전장치가
있는지 여부로 갈린다는 생각을 했다. 목숨을 걸었을 때에만, 몸짓은 예술이 되고 게임은 삶이 된다. 한편으로는 모든 삶이 같은 종말을 향해 흘러가는 까닭에, 목숨 건 삶이라는 건 모두에게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진탕에서, 벽돌 틈 사이에, 쓰레기 더미 위에서, 꽃은 피어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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