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3일 일요일

대물림

몇일전 은수 손을 닦아주다, 내 손을 평생 녹여내린 습진이 은수에게 전해졌음을 알게 되었다.그 순간 아.. 하는 신음소리 비슷한게 나왔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담담하였다.

습진은 친정 엄마 쪽 내림인데, 유독 나에게서만 심하게 발현이 되었었다. 특히 손가락 끝마디 살꺼풀이 계속해서 벗겨지고 일부는 터져 피가 나면서, 연필에 휴지를 두르고 글씨를 써야 했거나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나서는 건반에 묻은 피를 닦아야 했던 기억들이 있다. 아리고 쓰린 기억들이야 있지만 나는 습진에 대해 원망하는 감정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습진은 일찍부터 내 조건으로서 여겨졌던 것 같고, 그로 인한 아픔이나 불편도 그렇게 그냥 받아들여진 듯하다. 아파한 것은 거의 대부분, 습진을 '물려준' 엄마였다.

추우면 최악이 되는 손가락들에 엄마가 오일을 바르고 스팀 타올 해주던 날을 기억한다. 그렇게 마주앉아 내가 했다는 말, "엄마, 나는 아기 안 낳을거야. 걔가 습진 걸리면 안되잖아."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기 낳고 습진이 없어진 것 같다는 엄마 말에 나 역시 출산을 통한 습진 '치료'를 꿈 꾸기도 하였다. 나로써 습진의 대물림을 끝내느냐, 내 새끼에게 습진을 넘기고 나는 낫느냐.

은수를 낳고서도 내 습진은 낫지 않았다. 그리고 습진은 전해졌다. 다른 건 다 지애비를 닮아놓고 유독 손톱 생김새만 나를 닮은 게 계속 걸렸었다. 이미 두세 꺼풀은 벗겨진 듯 붉은 은수의 손 끝마디를 보며 저릿해오는 심정은 생애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아주 깊은 화인데, 그 불길은 이글거리는 게 아니고 마치 슬픔의 가락처럼 느리게 흔들렸다. 내 유전자 절반을 털어 생명을 만든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이는 이 완전한 압도감은 뜨거웠다. "그러니까 너는 나처럼 살지 마!" 엄마의 정언 명령이 평생 나를 쫓아 다녔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강하게 내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취할 수 있는 동작어는 "나는 너처럼 살지 않겠어." 뿐이었다. 나 역시 엄마의 절반으로 이루어진 몸뚱이다. 나는 너처럼 안 살아... 이 실현 불가능한 언어가 은수의 무심한 얼굴 표정 속에 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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