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9일 일요일

뉴욕 맨하탄으로 이사 온지 삼일째, 은수를 데리고 병원에 WIC(Women Infant & Children의 약자로, 생활비가 일정 한도를 못 미치는 가정에 한달 10만원 남짓의 식료품 보조를 하는 프로그램) 신청을 하러 갔다. 중남미에서 주로 이민 온 것으로 보이는 엄마들이 대기실에 아이들과 앉아 있다. 아이가 떼를 쓰면 아이 머리를 때리고서 M&M 초코렛 한 움큼을 꺼내 아이에게 건내주는 그들 곁에 앉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다. 엄마들의 속마음이 나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 저들의 남편은 오늘 아침 우리집 엘리베이터 안에서 본, 8시부터 땀범벅이 되어 쓰레기를 나르는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하나였을 터이다, 삶의 몇가지 사소한 조건들이 달라지면서 서로 다른 궤도 속에서 살고 있는 그와 그 가족들일 터이다, 하지만 그와 결혼한 저 여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새끼를 낳아 거두는 매일의 노동은 결국 제 몸뚱아리 혼자만의 것이라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 스러져 가므로, 나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저들의 거칠고 무심한 손길은 다만 내 전두엽에서 운좋게 차단되었을 뿐이다 - 그러나 저 아이들과 은수의 삶은 퍽 달라질 거라는 희미한 예감이 비쳐드는 순간, 쓰라린 침이 고였다.

집에 없는 텔레비전에 그저 신이 난 은수가 넋놓고 만화를 보는 동안, 나는 라티노 엄마들 곁에 앉아 간호사와 영양 상담을 한다. 내 눈은 M&M 초코렛을 하나둘씩 입에 넣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고, 내 입은 우리 집 매일 식단을 읊고 있었다. 간호사의 반응으로 보아 내 대답들이 '건강한' 식단의 조건을 꽤 잘 충족시키는 듯 해보였지만, 나는 그 어떤 긍정적인 느낌을 얻지 못했다. 예컨대 '아 내가 잘하고 있구나' 같은 뿌듯함 같은 것. 그사이 라티노 아이들 중 하나가 울고 엄마는 또 한움큼의 초코렛을 쥐어주었다. 나는 이순간 '나'의 육아에 성취감을 느끼고 있어야 하는 걸까?그렇다면 아마도 나는 육아에 전념하여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저 엄마들과 아이들은, 나와 은수의 삶에서 지금 이제부터 더 멀어지기만 할것이다. 내가 '모범적인' 식단을 수행하여도 그것은 오직 내 가족만을 위한 것이거나, 혹은 나와 비슷한 삶의 궤도를 도는 '교육받은' '중산층' 에서만 향유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아이를 키우는가? 이즈음에서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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