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사람들이 ‘일중독’에 걸렸다 할만큼 왕성하게 연구중인 슈테판은 현재 5살배기 딸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이혼을 준비 중이라 하고, 라리사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는 딸아이를 키우는 동안 필드웍을 거의 못했다고 한다. 이 두 상황을 놓고 보면 둘의 반응을 이해할 법도 하다: 남자인 슈테판의 학문 커리어에 육아는 적어도 외견상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으며, 여자인 라리사는 육아와 학문 활동 사이에서 위치 설정을 하느라 고생을 톡톡이 했을 가능성 말이다. 그러니 슈테판의 반응은 육아에 대한 피상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오히려 라리사의 반응이 실제 경험에서 나온 솔직한 것이었을 가능성. 아니면 이것저것도 없이 그저, 슈테판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고 라리사는 그보다 덜 한 것이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둘의 반응은 참 달랐고, 우습게도 나와는 처지가 한참 다른 슈테판의 반응이 나를 긍정적으로 고무시켰음에 틀림없다. 사람이 무엇인가 경험한다는 것은 이렇게 역설적인 걸까 – 마치 내가, 은수에게 결혼을 권하지 않고, 나아가 친구들에게 출산과 모유 수유를 권하지 않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타가 “그렇게 젖떼는 게 쉽지 않은데, 모유 먹인 것을 후회하니?” 하고 물었을 때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2012년 1월 16일 월요일
이곳 바분 프로젝트를 이끄는 두 선생님들 각각이, 내가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오는 것에 대해 보인 반응을 이따금씩 떠올리곤 한다. 슈테판은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영장류학을 하고자 하는 주된 동기가 되었다는 것에 공감을 하며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라리사는 토카이 숲에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는 필드에 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하면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라고 ‘돌려서’ 하지만 매우 직설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둘의 반응은 전지의 음극과 양극처럼 나에게 꽂혔고, 둘 모두 일리가 있다는 게 나를 짜릿하게 감전시켰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