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토요일

지난해부터 가능한 모든 연구장학금에 지원을 해보고 있다. 그동안 다섯개 지원한 것들 중에 하나가 가까스로 되었고 오늘은 하나로부터 또 낙방 소식을 들었다. 하나라도 땄으면 잘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마음을 추스리기에는, '팔리는' 연구를 해야 하고 어떻게든 그렇게 연구프로젝트를 가꾸어야 한다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기에 입속에 고이는 쓰린맛은 짙어져만 간다. '팔리는' 연구라고 해서 뭐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느때보다 박사과정생이 많은 데서 세진 경쟁 때문에 연구의 의의, 구체적인 질문, 계획, 방법에 있어 어느 하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뜻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팍팍함이 마치, 물건들로 가득찬 대형마트 진열대를 지나갈 때의 공허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 허무함이 오늘처럼 또 다른 낙방 소식을 접할때면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온다.

하필이면 그 순간이 오늘은 은수가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동안 찾아왔다. 삼십도를 웃도는 한여름 날씨인지라 이곳 놀이터들에서는 이미 분수를 가동시켰고 늦은 오후 늘어진 햇살 속에서 아이들은 한없이 뛰어다녔다. 그 친구는 내일이 생일인데 오늘은 은수와 조촐한 시간을 보내자고 아이 엄마에게서 그저께 연락이 왔었다. 출장이 잦은 직장을 다니는 아이 엄마는 작년 학기초에 아이가 학교에서 오줌을 싼다고 걱정했었다. 알고 보니 아이는 엄마가 없는 동안 친척 집들 이쪽저쪽에 옮겨다니며 허전하고 또 혼란스러운 마음이 컸던 것이다. 아이 엄마는 출장을 줄이려고 안간 힘을 쓴다고 했다. 어느 회사의 홍보 담당인 아이 엄마는 어떤 일을 하는 회사에 다니냐는 내 질문에 '그건 내가 아주 잘 대답해줄 수 있지' 하며 알기 쉽게 잘 이야기 해주었다. 너는 타고난 세일즈퍼슨이야, 말해주었다. 내가 가장 못하는 일, 세일즈를 잘하는 그녀가 사주는 저녁밥을 먹으면서 나는 십오분쯤 전 놀이터에서 폰으로 이메일 체크를 하다 읽은 낙방 이메일을 잊으려고 했다.

그렇게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집에 돌아오니 밀려나왔고, 여덟시 반이 되도록 자러 가지 않는 은수에게 넘쳐나 흘러 버렸다. 애써 잘 자라는 말을 하는 나를 쳐다보는 은수의 눈은 이미 숨기지 못한 내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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