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연휴. 아이들은 어떻게 알고 연휴 동안 꼭 아프다. 엄마곁에 머물 수 있을때, 눌려있던 병이 몸을 떠나려고 몹시 욱신거리는 게다. 어제저녁 은수가 새우 튀김이 먹고 싶다기에 오늘은 함께 슈퍼에 가 새우를 한 봉지 사왔다. 가는 길에 신이 났는지 은수는 Stand by me 노래를 불렀다. 나도 부르고, "뜸 뜸" 거리며 박자도 맞췄다. 슈퍼에서 돌아오는 길 은수는 자기가 커서 과학자가 되겠다 하였다. 화산을 연구하는 과학자라 하였다. 한참을 들떠서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두해쯤 전 은수가 오늘과 같이 일요일 오전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버스운전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버스운전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해준다 하였다 - 사람들은 늘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가 오면 좋아하니까. 지금도 그때도 은수는 자기 느끼기에 '좋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는, 내가 보기에 은수에게 '일어날법한'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어날법한 일이라는 것은 참으로 내마음대로다. 둘 모두에 나는 "멋지다"고 말해 놓고는, 하나에 대해서는 은수가 그 일을 정말 하게될지 모른다 생각하였고 다른 하나에 대해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세상에 공평하지 못한 만큼, 은수에 대해서도 공평하지 못함을 느꼈다. 넌 이런 사람이 될거야, (그리고 그래야 해), 라고 나는 말하고 또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너가 하고 싶은것을 하며 살렴" 말한다. 그러고 보면 은수와 이야기할때 난 항상 '내가 바라는' 은수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은수가 바라는 은수가 나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나는 침묵하는 편이다. 문제는 내가 바라는 은수가, 내가 되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던 나인 경우가 많고, 그것은 나의 강박일뿐 은수에게는 큰 (혹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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