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면 나는 주로 집안일을 한다. 밥상을 치우고, 상을 닦고, 이불과 베개를 털고 개고 (때로는 빨고), 또 바닥 닦고, 작은 빨래들을 하고, 다음 밥상 준비하고 하면서, 중간중간 은수가 부르는 데를 쳐다보며 대답하고 웃고 놀라고 화내고, 하면서 말이다. 은수는 저기 거실에 나는 여기 부엌에 혹은 방에 혼자 있을 때도 가끔 있지만, 대게는 은수가 나를 줄기차게 부르며 소리를 지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내 발 옆에 가만히 앉아 블록을 맞추거나 내 다리에 매달려 조용히 "엄-마"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사이를 메우는 것은 음악이다.
주로 은수가 틀어달라고 하는 놀이노래 CD들을 듣거나, 라디오인 경우 (광고가 없는) 클래식 방송 혹은 (광고를 알아들을 수 없어 편한) AFKN을 듣지만, 때로는 그 시간에 내 나름의 집중이 필요하면 내가 듣고 싶은 CD를 잽싸게 집어 넣는다 - 은수가 눈치채지 못하게. 마침 오늘은 은수가 장을 뒤지면서 "눈뜨고 코베인"의 CD를 꺼내길래 오랜만에 들어 보았다.
쭈그리고 앉아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귀에 들어오는 노래가 "네, 종종 전화할게요" 다.
나는 어느 구석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도
나는 호흡할 수 없어 호흡할 수 없어
아버진 괜찮으세요 많이 좋아지셨단다
참 다행이군요
형은 뭐 하고 있어요 아직도 취직시험 본단다
뭐 잘되겠지요 뭐
엄마는 어떻게 지내세요 나야 뭐 그냥 그렇지 뭐
넌 어떻게 지내니 월급은 잘 나오니
저는 뭐 그냥 그렇지요 뭐 그냥 그렇게 지내요
다음 달 부터는 돈도 좀 부칠게요
중간에 인스트루멘탈 부분에서 보컬 깜악귀가 엄마와 통화하는 소리를 재연해서 넣었는데, "엄마? 어.. 어 잠깐만," 하고는 "호흡할 수 없어 호흡할 수 없어" 하는 코러스가 다급한듯 삽입된다. 나는 상황에 이입되어 숨이 막힌듯 멍하게 창밖을 보다가 은수랑 눈이 마주쳤고 은수는 씨익 웃으며 "엄-마?" 한다. 깜악귀가 "엄마?" 하는 것을 따라하고 있는 은수의 백프로 순진함과, 언젠가부터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면 깜악귀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아니 호흡을 멈춰야 하는 나의 백프로 먹먹함이 공중에서 만났다. 소리없이 부딪히고서 아무 교감없이 각자 흩어져버린 두 감성. 걸레를 한쪽 손에 들고 멈췄다 움직이다를 반복하면서 노래를 듣고, 또 한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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