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기차기 우승을 차지한 뒤 두 팔을 벌리고는 느긋한 원을 그리며 엉덩이춤을 추시던 할아버지와 깔깔거리던 구경꾼들
- 훌라후프 예선전을 앞두고 훌라후프 세 개를 '박력있게' 튕겨가며 연습하시다가, 넋놓고 바라보며 "우승후보다..." 라고 순진하게 읊조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있게 웃어주신 아주머니(아주머니는 결국 훌라후프 다섯 개를 돌려야 하는 결승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셨다)
- 발을 동동거리며 "우리 신랑 왜 안오는거야!!" 소리를 지르던 어느 애엄마가, 벌건 얼굴로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보자마자 유모차를 끌고 급히 달려가던 모습. 그 모습을 기분좋게 지켜보다가 어느덧 속으로 "형률이는...?" 하며 괜시리 짠해지려던 참에, 청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리고는 특유의 뛰는 폼으로 눈앞에 나타난 형률.
- 말그대로 숨을 팍팍 조여왔던 족구 결승전에서 12:14가 12:15로 바뀌면서 승패가 갈리던 순간, 내가 응원하던 대룡1리 팀의 모습 - 에이스는 혼자 무너져 앉고, 나머지 선수들은 주장으로 보이는 이호진 아저씨의 다독임을 받던 모습,
-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이십년쯤 뒤 교동 체육대회의 대미를 장식할 '차세대 족구 선수들'이 하릴없이 뻐엉뻥 차대는 족구공이 가끔씩 높이 솟았다가는 떨어지던 모습.
그러나 결국 체육대회와 관련해 가슴에 묻어두어야 했던 것은 체육대회 다음날 반찬거리 사러 들른 유신식품에서 아줌마와 나눈 이야기일 것이다. "어제 안 오셨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생각없이 물었는데 어쩐지 아줌마 얼굴은 밝지 않다.알고보니 어제가 고등학교 전국모의고사였고, 애꿎게도 '윗사람'들은 고등학교 운동장을 굳이 체육대회 장소로 밀어부쳤다는 것이다. 모의고사는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을 게 분명하다. 아줌마를 맥빠지게 만든 것은 아이들이 그날 모의고사를 망쳤을 거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시골 아이들'을 '대학 잘보내' 교동 땅값을 '강남처럼' 뛰게 해주겠다는 식의 호언장담을 하며 취임한 교장의 교육신념이, 학생들이 자기 실력을 점검해볼 수 있는 모의고사 기회조차도 배려해주지 못하는 '막장' 신념임을 씁쓸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울분을 삼킬때처럼 조용한 것일수밖에 없는 것이, 작은 공동체이다보니 '잘못 튀었다가는' 아이에게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몇일 뒤 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했던 점심모임에서 형률은 면장님께 체육대회날 고등학교 학생들 일정을 배려해주지 못한 게 아쉽다는 뜻을 전했지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고. 이것이 정작 교동 체육대회의 가장 잊을 수 없었던 '디저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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