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8일 목요일

정작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순간들

  • 제기차기 우승을 차지한 뒤 두 팔을 벌리고는 느긋한 원을 그리며 엉덩이춤을 추시던 할아버지와 깔깔거리던 구경꾼들

  • 훌라후프 예선전을 앞두고 훌라후프 세 개를 '박력있게' 튕겨가며 연습하시다가, 넋놓고 바라보며 "우승후보다..." 라고 순진하게 읊조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있게 웃어주신 아주머니(아주머니는 결국 훌라후프 다섯 개를 돌려야 하는 결승에서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셨다)

  • 발을 동동거리며 "우리 신랑 왜 안오는거야!!" 소리를 지르던 어느 애엄마가, 벌건 얼굴로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보자마자 유모차를 끌고 급히 달려가던 모습. 그 모습을 기분좋게 지켜보다가 어느덧 속으로 "형률이는...?" 하며 괜시리 짠해지려던 참에, 청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리고는 특유의 뛰는 폼으로 눈앞에 나타난 형률.
  • 말그대로 숨을 팍팍 조여왔던 족구 결승전에서 12:14가 12:15로 바뀌면서 승패가 갈리던 순간, 내가 응원하던 대룡1리 팀의 모습 - 에이스는 혼자 무너져 앉고, 나머지 선수들은 주장으로 보이는 이호진 아저씨의 다독임을 받던 모습,
  •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이십년쯤 뒤 교동 체육대회의 대미를 장식할 '차세대 족구 선수들'이 하릴없이 뻐엉뻥 차대는 족구공이 가끔씩 높이 솟았다가는 떨어지던 모습.
이 순간들은 엉성한 나의 카메라 손놀림을 빠져나가고, 카메라를 치켜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미처 들기도 전에 지나가버렸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래서 더더욱 잊을 수 없던 순간이다. 2009년 6월 17일, 교동면민의 날 기념 체육대회.

그러나 결국 체육대회와 관련해 가슴에 묻어두어야 했던 것은 체육대회 다음날 반찬거리 사러 들른 유신식품에서 아줌마와 나눈 이야기일 것이다. "어제 안 오셨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생각없이 물었는데 어쩐지 아줌마 얼굴은 밝지 않다.알고보니 어제가 고등학교 전국모의고사였고, 애꿎게도 '윗사람'들은 고등학교 운동장을 굳이 체육대회 장소로 밀어부쳤다는 것이다. 모의고사는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을 게 분명하다. 아줌마를 맥빠지게 만든 것은 아이들이 그날 모의고사를 망쳤을 거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시골 아이들'을 '대학 잘보내' 교동 땅값을 '강남처럼' 뛰게 해주겠다는 식의 호언장담을 하며 취임한 교장의 교육신념이, 학생들이 자기 실력을 점검해볼 수 있는 모의고사 기회조차도 배려해주지 못하는 '막장' 신념임을 씁쓸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울분을 삼킬때처럼 조용한 것일수밖에 없는 것이, 작은 공동체이다보니 '잘못 튀었다가는' 아이에게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몇일 뒤 면사무소 직원들과 함께했던 점심모임에서 형률은 면장님께 체육대회날 고등학교 학생들 일정을 배려해주지 못한 게 아쉽다는 뜻을 전했지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고. 이것이 정작 교동 체육대회의 가장 잊을 수 없었던 '디저트'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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