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0일 월요일

'비폭력적' 출산, 그리고 죽음

확실하게 하고 싶은 문제들이 있다(...많다). 예컨대 '평화'를 '자연스러움'과 동일시하는 명제. 전자는 윤리적 가치인데, 후자는 '가치'이기보다는 현상에 더 가깝다 - 어떤 상태, 그 자체. 그러므로 '평화'는 '자연스러움'과 달리 가치로서 지향하여 노력할 수 있는 문제이다. 둘은 다른 궤도를 도는 문제인 것이다. 만일 '평화'를, '싸우지 않는 것' '인상찌푸리지 않는 것' '안 아픈 것' '살리는 것' 따위라고 해버린다면, '평화'는 '자연스러움'과 더욱 더 먼 문제가 되어버린다.

사실 자연에는 싸움, 스트레스, 고통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 '그 자체'. (죽음 그 자체를 생각한다는 게 가당한 건가? 나는 살아있는데!) 굶어죽음, 맞아죽음, 물려죽음, 타죽음, 빠져죽음, 늙어죽음 그리고 개죽음. 죽음의 수많은 가능성들에 맞서 '무엇이든' 할 때, 인간 존재는 이미 조금씩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밭을 갈아 씨앗을 심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 사이에 규율을 만들고 처벌을 하면서부터, 몽둥이로 맹수를 때려죽이면서부터. 죽지 않기 위함 - 이 모든 것들이 피어난 목적.

소위 '비폭력' 출산을 말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들은 '비폭력적'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자연스러움' 속에 아기나 산모의 죽음까지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죽는것 조차 어려운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죽음을 감수하고 뭔가를 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차라리, 철저히 '폭력적'으로, 병원 수술대에 누워 무통 분만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죽음을 감수한다는 개념 따위도 없고, 오로지 내 몸 안 아프게, 편하게 아기를 낳는 것.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되면서부터, 진정한 고통이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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