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4일 금요일

쉼없이 뭔가를 읽는다. 학술서, 아이들이 쓴 글, 문자, 상소문, 만화, 칼럼, 홈페이지의 개인글, 거기에 딸린 덧글, 이메일, 연구계획서, 글에 관한 글.. 이건 독서가 아니고, 허기를 달래는 행위에 가깝다. 그런데 그 허기가 진짜 허기인지, 폭식증 걸린 이들의 강박인지 알 수가 없다.

문득, 1977년 11살이었던 여자 아이가 쓴 생활글에서 두 눈이 퀭하게 멈춰 선다. 농사 짓느라 바쁜 엄마를 대신해 저녁밥을 짓는 풍경. "숟가락을 놓고 김치와 간장을 차려 놓고 밥을 푸니" 엄마 아빠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단란한 세 식구가 밥을 먹기 시작한다, "김치와 간장을 차려 놓고."

냉장고 가득 넘치는 식재료들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해먹을 요리들을 적어둔다. 나의 목표는 어느새 '버리는 것 없이', '상하기 전에' 이것들을 다 먹는 것이 되어 있다. 근근히 하루를 '넘긴다'는 개념은, 포화된 저 냉장고 속에나 내 삶 속에나 애초부터 없었다. 따뜻한 밥 한그릇과 "김치와 간장"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한 '일용할 양식'이란 게 허락되지 않는 삶.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30년의 세월을 건너 저 여자 아이는 이제 어느 지붕아래서, 어떤 밥상을 차리고 있을까. 그녀의 냉장고도 대형 할인마트에서 실어 나른 식재료들로 넘치고, 미처 '먹어 치우지' 못한 것들이 어디선가 썩어가고 있을까.

섭취할 수 있는 수많은 문장들이 쌓여 있고, 나는 '원하는 만큼' 읽고 또 먹을 수 있다. 뱃속에 자라는 한톨 생명도 쉼없이 먹어대는지 요즘은 말그대로 '뒤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그 가운데서 건져 올릴 귀한 일독, 귀한 맛의 순간이 더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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